이지현 작가의 ‘수영장’ 기획과정 이야기

그동안 진행했던 여러 창작 그림책 과정에서 이지현 작가와의 첫 인연은 2012년 힐스 포스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힐스 포스트프로그램은 정규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맞는 전문 영역을 선택해 계획했던 작품을 완성하고 현업 작가로 도전해보는 과정이었죠. 제가 맡은 그림책 워크숍은 당시 10명 안팎의 멤버들과 함께 각자 첫 그림책 작업을 위해 도전하는 시간이었고 8개월에서~1년 정도의 창작 기간을 통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좋은 출판 파트너를 찾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이지현 작가가 수영장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기 전에 습작으로 진행했던 짧은 ‘시 그림책’이 기억이 납니다.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매우 감성적이고 차분하게 표현했던 글과 담백한 라인 드로잉이 저를 포함해 다른 친구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죠.

이어진 본격적인 기획이었던 ‘수영장’은 사실 1~2컷의 샘플 그림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전체 스토리보드와 이야기구조를 만들기 전에 여러차례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수정하고 리뷰하는 과정을 진행했지요.

일러스트레이터의 입장에서는 처음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장면과 연속성을 만들때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데 이유는 타인 즉, 독자의 대상과 경험 수준이 매우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워크숍 과정에서 이 부분을 되도록 작가가 의도한데로 전달하기 위해 선생뿐만 아니라 동려들 심지어 지인, 가족들의 의견도 구하게 됩니다. 사실 이때 신인작가의 경우 여러의견으로 인해 명확해지기 보다 오히려 혼란스럽기도 하죠.

현재 유명 그림책 작가들의 작업과정을 소개하는 그림책작가들 블로그(Picturebook Makers)에서 이지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수영장’의 기획 과정을 회상하며 소개했습니다.

“<수영장> 기획은 몇해전 여름, 수영장에서 일어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출발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갔던 수영장이었고 사실 물을 두려워했었죠.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고무 튜브나 구명 조끼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무슨 용기인지 수경을 쓴 후 물 속으로 몸을 낮추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두려움과 달리 내 몸이 점점 물속에 더 많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고 나는 전에 보지 못했던 물 아래의 장면을 유심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수면 위와 달리, 물밑은 조용하고 평화롭고 넓은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그리고 수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다리들 사이에서 나는 다른 편에서 나와 같은 느낌으로 수영 하는 어떤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기억 때문에 이 장면이 그려졌고 이후 많은 장면과 내용이 발전되어 이 작품을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지현 작가는 이 장면에서 캐릭터 연출에서부터 수영장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다른 주인공이 소녀가 아니라 곰이었는데 여러 스토리보드 형성 과정과 구성을 통해 소녀로 바뀌었고 구성이 자연스러워졌지요.

이지현 작가의 원화 채색은 색연필이 주재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부 파스텔, 수채화 등 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해진 색상의 색연필로만 채색합니다. 이지현 작가는 스케치 과정에서 연필도 쓰지만 펜 드로잉도 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수정마카를 써서 형태를 고쳐가면서 스케치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테이프나 액체로된 수정마카 흔적은 펜드로잉하는 작가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펜 드로잉의 장점은 형태를 좀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후 원화 채색 과정으로 확대 연출하거나 라인을 따서 다양한 원화 표현에 응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요.

반대로 스케치 과정에서 수정이 연필과 지우개처럼 직관적으로 하기 어려워 일부 작가들은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또한 다양한 펜촉이나 유성, 수성 등의 섞임과 퍼짐 그리고 방수 등의 기능을 통해 연필이 가지고 있지 않는 기법을 순간적으로 스케치 하면서 얻어 낼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법이 익숙해져 자신만의 드로잉 스타일로 안정적으로 습관화 되려면 오랜 시간 연습 되어야 합니다.  

이지현 작가의 주재료인 색연필은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재료이지만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채색이 고르게 표현되는 질감과 강약의 조화 등 원화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즉, 여러번 테스트하면서 색의 배열 등 맞춰보면서 배경과 요소들을 분리하고 겹쳐봐야 합니다.

또한 원화에서 색연필의 질감이 섬세한 느낌 그대로 스케닝 되고 다시 인쇄될때 달라지는 표현들이 많기 때문에 적정한 밀도감과 색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하면서 원화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색연필이 잘 표현되는 종이와 결의 방향도 이해하고 무엇보다 넓은 면적뿐만 아니라 좁은 면적도 같은 균질화된 표현이 나오도록 색연필을 여러 번 깎아가면서 작업해야 하는 고충도 있죠.

당시 워크숍 과정을 마치고 가제본을 만들고 원화 전시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채색한 이지현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발표된 더미북에서 추후 출판사와 계약 후 수정된 장면 중 거대한 흰고래를 만나는 장면이 이 책의 백미가 되었죠. 많은 형태의 다양한 캐릭터 물고기를 다시 표현하고 그리기도 어려웠지만 털이 수북한 흰고래의 상상력은 이 작품의 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작가의 작품이 그것도 첫 작품이 여러 과정과 노력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순간입니다. 한국에서 이야기꽃 출판사를 통해 출판된 수영장은 볼로냐에서 미국 크로니컬 출판사(Chronicle Books)에 저작권이 수출되었고 바로 다음해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US Society Illustrators) 2015년 황금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동시에 여러나라에 번역 소개되면서 전세계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첫 기획과 창작과정을 같이 하게된 저에게도 영광이지만 재능있는 작가가 묻히지 않고 넓은 세상에 나가는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특히 글없는 그림책은 오로지 시각언어로만 메세지를 전달해야 하기에 독자를 감동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그림책장르에서 말이죠. <수영장>이어 <문>, <이상한 집>으로 계속 발표되고 있는 이지현 작가의 작품이 앞으로 독자에게 어떤 상상력을 줄지 기대됩니다.
이지현 작가 사이트 방문하기  Jihyeon Lee Blogspot

천상현(그림책 기획자)

 

 

이지현 지음, 이야기꽃 2013년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