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랑과 여백

천상현(그림책 기획자)

편집기획자로 그림책 작가와 작품을 진행하다보면 작가가 최종 원화를 마치고 레이아웃을 할때 가끔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애써서 오랫동안 그림이 잘리거나 책 도랑 또는 가름(Gutter)*에 접혀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가 원화를 그리기 전에 이 부분을 충분히 계획해도 실제 디자인을 하면서 책의 전체 완성도와 흐름에 따라 레이아웃이 변경되는 것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을 아주 현명하게 이용하는 작가도 있다. 이수지 작가의 ‘경계 삼부작’은 책 도랑을 그림책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로 보고 독자가 책을 볼때 움푹 들어간 그 공간을 자신의 그림책을 구성하는 중요한 판타지의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작품을 보면 역시 그림 외각의 마진(여백)을 두어 프레임 효과를 이용하여 반대편에 페이지에 글을 넣어 그림과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크리스도 그림과 그림의 분리를 통해 글과 그림의 적정한 거리두기를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맨위) 이수지 작가의 경계 삼부작-거울, 그림자, 파도
중간) 책을 바닥에 놓고 가로로 볼때를 이용
아래)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The Mysteries of Harris Burdick 책의 내지 테두리

상출판사에서 나온 강혜숙 작가의 <수레를 탄 해>와 <별세계>는 위로 펼쳐서 보는 그림책이다. 이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보다보면 불편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좌우로 넘기는 책은 바닥이나 책상을 이용해 지탱하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기 편한데 반해, 위로 달력처럼 넘기는 제본은 두 손을 모두 써야하고 때로는 어떤 지탱할 곳 없이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상 같은 지지대를 쓰지 않으면 한장 한장 넘기고 읽기가 불편한 상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위로 넘기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그림에 대한 감상과 상상이라는 즐거움에 독자가 좀 더 집중해주길 바래서이다.
책을 L 자의 형태로 책상에 놓고, 위쪽 페이지는 글을, 아래쪽 페이지는 그림을 분리해서 읽다 보면, 독자는 글을 읽은 후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약간의 시간 차이와 반복해서 보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시간 차이 때문에 독자는 그림에 숨겨진 의미와 느낌을 감상하게 된다.

페리 노들먼은 <그림책 론>에서 좋은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의 미학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이며 그것의 조화라고 지적했다. 독자들이 이런 미학과 이론을 이해하면서 그림책을 감상할 필요는 전혀 없고, 작가 역시 그런 이론에 창의를 방해받거나 고정된 생각을 하면 안된다. 그러나 그림책을 기획하는 작가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책이라는 물리적 요건을 방해나 제약이 아닌 장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디지털 데이터 방식의 그림책 또는 컨텐츠와 다른 성질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의해야 할것은 그저 특이한 구조의 방식을 강조한 나머지 기본적인 글과 그림의 유기적인 작용마저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Gutter(책도랑, 가름): 책을 펼칠때 제본으로 인해 가운데 접혀 들어간 부분 또는 경계.